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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에어프라이어 추천기

발단은 연초의 명절선물이었다. 부모님께 사드린 에어프라이어가 역대급 호응을 받은 것이다.

처음엔 깨작깨작 호기심일 뿐이었는데, 써볼수록 사랑스러운 물건이라며 두 분은 에어프라이어의 열렬한 찬양자로 돌변하셨다. 날마다 아침에는 소시지와 해쉬브라운을, 점심에는 고기를, 저녁에는 간식으로 만두와 크루아상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려먹는데, 평소 먹던 것보다 배 이상 맛있어지지 않는 음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원래 자이글 러버였던 아부지는 마치 변심한 애인처럼 자이글에 차가워지셨다고도 했다.    

“너도 꼭 사야한다.” 

만날 때마다 아버지는 단호히 말씀하셨고, 어머니도 옆에서 주억주억 고개를 끄덕이시곤 했다.

 

나는 거의 반년을 꿋꿋이 버텼다.  내게는 광파오븐이 있기 때문이었다. 전자렌지도 있기 때문이었다. 토스터기, 심지어 와플메이커도 있었다. 없이도 충분히 잘 해먹고 살았는데, 구태여 조리용 전열가전을 하나 더 산다는 게 좋은 아이디어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짐짓 시큰둥해하는 내내 부모님은 내 귓가에 ‘에어프라이어를 사라’는 주문을 합창으로 외웠고, 댁을 방문할 때마다 뭔가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맛있는 음식들을 열심히 내다주셨고, 어느날부턴가 내 귀도 코끼리 덤보처럼 펄렁이기 시작했다. 

 

호기심반 체념반으로 마침내, 나도 여름이 되기 전에 에어프라이어를 사기로 결심했다.  (결심과 동시에 와플메이커를 중고로 팔아서, 알량한 여유공간과 구차한 핑계도 확보하였다.)

 

에어프라이어를 맞이한지 이제 3주. 나는 명실공히 에어프라이어의 노예가 되어있다. 

배송을 받아 녀석을 꺼내 설치한 그 운명의 날 이후, 단 하루도 타이머 다이얼을 돌리지 않은 날이 없다. 이런저런 식재료들을 테스트한다는 명목이었지만, 결과물들의 만족도가 대체로 다 높았다. 게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간편하다! 어떤 요리들은 오븐으로 굽는 것과 거의 차이가 없기도 한데, 예열도 없이 절반 이하로 시간이 단축되는 것만으로도 에어프라이어는 제 존재의의를 다 하는 셈이다. 

 

먼저 에어프라이어로 해먹은 각종 음식들. 

 

군만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세상의 군만두 러버들은 반드시 에어프라이어를 사야만 한다. 

에어프라이어로 처음 만두를 구운 날, 나는 눈물에 젖은 군만두 맛을 보았다. 뜨거운 후라이팬 앞에 십분씩 우두커니 지키고 서서 튀는 기름을 두려워하며 멈칫멈칫 만두를 뒤집고 굴리던 지난 세월의 기억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통한의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아, 1년을 일찍 살 것을! 1달을 일찍 살 것을! 하루라도 일찍 살 것을!

 

심지어, 나는 평생 찐만두파였다. 

에어프라이어를 영접한 후, 다시는 만두를 쪄본 적이 없다. 

왕년에 맹활약하던 내 만두찜기를 볼 때마다, 자이글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짜게 식은 마음이 넘치도록 이해가 가곤 하는 것이다... 

 

냉동만두를 구워먹는 방법은 세 가지를 테스트 해보았다. 

1. 과자같은 만두피를 원하면, 200도 10분, 뒤집어서 5분. 

2. 튀김같은 만두피를 원하면, 오일스프레이후 역시 200도 10분, 뒤집어서 5분. 

3. 복합적인 효과를 원하면, 120도의 저열로 10분을 돌린 다음, 200도로 10분. 어떤 고마우신 분이 카페에 알려주신 방법으로, 가장자리는 담백하게 구운 과자같고, 소를 감싼 부분은 기름지게 튀겨낸 것 같은 느낌을 낼 수 있다. 만두소의 기름성분이 촉촉히 배어나와 튀김 효과를 내는 걸 노린 건데, 100%의 성공은 아직 못 거두어봤다. 

 

 

 

순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순대 러버들은 반드시 에어프라이어를 사야 한다. 

순대라는 음식은 본래도 강력한 마력을 지녀 한번 매혹된 사람들이 목줄에 매인 개마냥 반경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맴맴 맴돌게 만드는 것이 특징인데,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순대는 이제 그 마력의 끝판왕이다. 겉면이 뻥튀기처럼 파삭파삭하면서 속은 따뜻하고 부드럽기 이를 데 없어, 저작행위로 구현할 수 있는 지고의 쾌(快)를 단 한 입에 집약적으로 누릴 수 있게 해준다. 경쾌하게 부수고 들어가는 치감에 이어, 촉촉하게 풀어져 입안을 가득 감싸주는 당면과 지방분의 부드러움이라니, 아아, 하루의 피로, 삶의 고단함, 사람 납작하게 만드는 스트레스는 다 어느 우주의 얘기란 말인가? 이런 순대가 이 은하에, 이 세상에, 내 입 안에 있는데. 

 

 

 

감자튀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맥주 러버들은 반드시 에어프라이어를 사야 한다. 

감자튀김은 술배를 기름지게 살찌워주는 맥주의 단짝친구다. 

맥주가 우리의 친구고, 친구의 친구는 친구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에어프라이어에서 나온 감자튀김이 진짜로 예술이라서 하는 얘기다. 

아니, 정정하겠다. 사실 당신이 맥주 러버가 아니어도, 

그냥 감자 알러지가 없다는 것 하나로, 에어프라이어를 살 이유는 차고도 넘쳐흘렀다.  

 

그리하여 반신반의하여 에어프라이어를 사고, 

거기에 냉동감자튀김을 소심하게 한 스쿱 튀겨보고 난 당신은, 

당신의 냉동실이 너무 좁아 터졌다는 사실을 재빠르게 계산해내고

안 그래도 번민 가득한 인생에 새로운 번민이 추가되는 비극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울부짖게 될 것이다... 냉동고가 필요해! 냉동감자를 종류별로 사다쟁일 냉동고가 필요해!!! 하고 말이다. 

 

마치 저 냉동 포테이토퍼프를 처음 튀겨먹은 날 내가 그랬던 것처럼. 

 

(게다가 우리는 냉동만두도 종류별로 사다넣어야 한단 말이지. ㅠ)

 

 

 

치킨. 

두꺼운 튀김옷이 기름 듬뿍 먹어 나오는 후라이드 치킨 타입을 좋아한다면,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치킨은 아주 만족스러운 메뉴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튀김옷이 얇은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제 교촌치킨 네네치킨 굽네치킨에 갖다바치던 야식비로 테슬라를 한 대 뽑으시겠네요. ^^

 

세 가지 버전으로 테스트 해보았다. 

1. 튀김옷 안 입힌 로스트 스타일: 오우, 너무 건강식의 맛.

2. 치킨파우더와 빵가루를 얇게 입힌 스타일: ‘굽네 오리지널 사먹을 필요 없네.’ 

3. 2번을 간장마늘소스에 굴린 스타일: ‘이제 교촌 갈 일 없겠다ㅋ’

 

순서대로 로스트스타일, 튀김옷입힌 굽네스타일, 마늘간장소스에 굴린 교촌스타일

 

튀김옷 입히기가 되게 번거로울 것 같지만 전혀 아님. 

치킨파우더도 구하기 어렵지 않다. 이마트 노브랜드 치킨튀김가루 1200원 주고 한 봉 사오세요.

비닐에 그거 넣고 빵가루 넣고 닭 넣고 쉐킷쉐킷 주물주물 1분이면 튀김옷 입히기 끝.  

 

나는 운동하러 가기 전에 닭을 우유양념에 재워두었다가, 

집에 오자마자 손만 씻고 후딱 튀김옷 입혀 에어프라이어에 집어넣었고,    

요리되는 동안 씻고 옷갈아입고 다 하고서 20분만에 먹을 수 있었다. 배달 기다리는 시간만큼도 안 걸린다.

 

 

쥐포.

130도에 3분. 쥐포 테스트가 좀 어려웠다. 너무 높은 온도를 설정하거나 너무 오랜 시간을 돌리는 바람에 새카맣게 태워먹은 게 다섯 번이다. 해보니 낮은 온도로 잠깐이면 된다. 에어프라이어에서는 골고루 잘 구워져서 시간과 온도만 잘 맞추면 가스불에 그을려 먹는 것보다 나은 것 같다. 그리고 맥주안주 없을 때,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어묵 한 장 꺼내서 에어프라이어에 쓱 돌리면 쫀득바삭한 어포과자가 되어 나온다.  

 

왼쪽이 쥐포, 오른쪽이 어묵

 

 

 

밥.

밥에 참기름, 소금, 깨소금 넣고 잘 섞어준 다음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해서 에어프라이어에 10분 구우면 구운 주먹밥이 된다. 밥 양과 굽기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납작하게 빚어서 겉이 바삭바삭 과자 같아지도록 구워 먹었다. 내 경우 현미와 귀리로만 밥을 짓기 때문에 찰기가 부족해서 부슬부슬 떨어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간편하고 아주 맛있다. 반찬 없을 때 최고! 

 

 

 

 

 

 

 

 

생선.

에어프라이어에 생선을 구우면 냄새가 거의 안 난다. 이만한 장점이 어딨겠는가. 

껍질이 크리스피해지는 걸 좋아하는 내 취향에는 맞지 않지만, 어찌나 부드럽게 요리되는지, 한 점 집어 입에 넣으면, 추운 겨울 오리털 이불의 솔기 사이로 삐져나온 솜털을 손끝으로 살살 어루만질 때의 기분을 입안으로 똑같이 느낄 수 있다. 

 

 

 

 

 

 

 

채소.

제철채소를 올리브유, 소금, 허브로 버무려 내열용기에 담아 구우면 오븐을 이용한 채소구이와 차이가 없다. 단 10분이면 된다는 게 가장 큰 차이. 토마토와 가지를 시험해보았는데, 토마토를 특히 자주 해먹을 거 같다. 

 

 

 

 

 

 

 

 

 

고기.

삽겹살이 겉바삭 속촉촉으로 그렇게 맛있게 된다고 하는데 아직 안 해먹어 봤고, 구이용 목살을 구워먹어 봤는데 음, 안타깝게도, 겉바삭 속촉촉 어메이징 판타스틱 마블러스 한 접시로 재탄생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목살이라 그랬으려니 한다. 통삼겹으로 해보면 다를 것이다 아마. 

 

소고기 스테이크는 부모님이 해주셔서 먹어봤다. 아주 간편하고, 아주 맛있지만, 소고기에 관한 한 에어프라이어는 나의 선택지가 아니다. 나에게 스테이크 고기가 있다면 100이면 100, 버터 넉넉히 둘러 무쇠팬에 구워먹을 것이기 때문에. 

 

출처:brunch 리피디